살아있는 계란이 죽은 바위를 뛰어넘은 영화 ‘변호인’

[영화산책 ]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나 허구임을 알려드립니다”
영화 <변호인>을 소개할 때 따라붙는 말입니다.
전직 대통령을 모델로 했다, 특정한 정치집단에 우호적이다, 특정한 사건을 왜곡되게 다루었다 등등 이 영화와 관련된 수많은 의견들을 잠시 내려놓고, 영화 자체로만 바라보려 합니다. 천만 관객을 훌쩍 넘은 이 영화의 성공 비결은 정치적 성향을 떠나 ‘사람 냄새’가 나고, ‘재미’와 ‘감동’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의 시대배경은 민주화의 투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는, 학생들과 소위 깨어있는 시민들 사이로 민주화의 열기가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을 무렵, 정부에서는 그런 사회 분위기를 잡기 위해 군인들을 동원해 압력을 가하던 시기였습니다. 1980년대 초 부산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개천에서 용이 된 속물변호사


송우석(송강호 분)은 처음부터 인권변호사로 나선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삶은 처절했습니다. 공사판에서 일을 하며 아내가 아이를 출산했는데도 병원비 낼 돈이 없었고, 밀린 밥값도 못내 국밥집 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도망갔을 정도였습니다. 어렵게 변호사가 되었지만 고졸 출신에다 돈도 없고, 배경도 없어서 자신을 알리고자 야간업소 웨이터들처럼 명함 전단지를 돌리며 광고하러 다녔습니다. 고생 끝에 낙이라고 송우석은 등기 전문 변호사부터 세법 전문 변호사까지 승승장구하게 됩니다.

오직 세상의 성공과 돈을 벌기 위해 눈이 멀어 있던 송우석. “데모로 세상이 바뀔 것 같아? 내가 아는 세상은 그렇게 말랑말랑한 곳이 아냐.”라며 바닥 인생에서 변호사로 자수성가하기까지 자신이 부딪혔던 경험에만 비추어 세상을 바라보는 편견을 가진 송우석이었습니다.

국밥집 아들의 억울한 사연


세법 변호사로 부산에서 제일 잘나가고 대기업의 스카우트 제의까지 받을 정도로 성공가도를 달리며 전국구 변호사로 명성을 날릴 즈음, 돈 없던 시절 이용하던 국밥집 아들 진우가 실종됐다는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송우석은 국밥집 아주머니 순애와 함께 행방을 수소문하다 구치소에 감금당해 온갖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진우의 믿지 못할 모습에 충격을 받게 되고, 이때부터 세상일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인생의 180도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이런 게 어딨어요?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진우의 일로 세상일에 눈을 뜨게 된 송우석은 이런 일이 세상에 존재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내 아이들은 이런 세상에서 살게 하고 싶지 않아’라는 생각을 굳힌 송우석은 비상식적인 세상에 분노하며 자신만의 시각에 갇혀있던 생각에서 벗어나 약자를 대변하는 인권 변호사로 거듭나게 됩니다.

제가 할께요, 변호인


군사정권의 유지를 위해 선량한 시민을 공산주의자로 내몰아 온갖 고문을 자행하는 등 옳지 않은 일이 벌어지지만 사람들은 귀를 닫고 입을 막으며 진실을 보려 하지 않습니다. 그저 언론에 떠들어대는 것을 믿으며 자신들의 삶을 지키려 할 뿐이었습니다. 송우석은 그런 사람들을 향해 자신이 변호를 하겠다고 선뜻 나서게 됩니다. 잘못된 국가의 권력 앞에 복종하지 않고 “무죄면 무죄판결 받아 내야죠, 그게 내 일입니다.”라며 발 벗고 나섭니다.

과연 이 세상에 몇 명이나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나도 저 상황이라면 할 수 있을까?

그런 송변호사에게 집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옵니다. 아들이 잘 지내는지, 몇 학년 몇 반인지... 아들의 신원을 확인하는 듯한 전화를 아내가 받습니다. 어느 날 저녁 아내는 그 일 그만하면 안 되겠냐고 합니다. 그러나 송변호사는 변하지 않습니다. 가족들마저도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상황에서 굴하지 않는 송우석의 모습을 통해 용기와 집념, 끈기와 배짱을 느낄 수 있었고 돈이나 성공보다도 더 소중한 것은 신념과 정의임을, 그리고 올바른 일은 반드시 해야함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정의로운 자는 외롭지 않다


송우석은 진정한 애국은 국민을 위한 행동이라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외칩니다. “국가는 곧 국민입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진정한 애국은 정치권력의 틈바구니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존엄성과 가치를 존중해 그들의 편에서 대변해 주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강자와 약자의 계층이 나뉘어져 있고, 부조리한 문제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면, 대다수는 권력의 손길 앞에서 방관자의 입장이거나 무관심에 그치는 것이 보통입니다. 이럴 때 약자의 편에 서서 그들을 위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니라는 공분심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이었습니다.

이후 송우석의 삶은 국민을 위해 싸우고 법을 지키며 바른 일에 앞장서는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게 됩니다. 마지막 재판 장면은 데모를 선동한 죄로 법정에 선 송우석을 대변하기 위해 부산 지역 149명의 변호사 중 99명이 재판의 증인으로 참석해 지지를 표명하는 광경으로 그려지면서, 현실에 굴하지 않고 부조리한 현실을 바로잡으려 부단히 전진하는 모습으로 막을 내립니다.

“바위는 강하지만 죽은 것이고 계란은 약하지만 산 것입니다.
계란은 살아서 바위를 뛰어넘습니다.”
<변호인>은 수많은 장애물이 가로막더라도 포기하지만 않으면 단단해 보이는 죽은 바위도 언젠간 뛰어넘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돈과 성공의 이끗만 보고 현실에 안주해 자신과 타협하지 말고, 부조리한 현실에서 올바르게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의 가치와 신념을 지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세속적인 한 인간이 역사적인 한 사람으로 거듭 태어나는 것은 가을 개벽기에 살고있는 오늘의 인류에게 사뭇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