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유(屯有)를 우동어홀로 변개하여 대방황해도설을 만든 이병도

2021.07.12 | 조회 23

둔유(屯有)를 우동어홀로 변개하여 대방황해도설을 만든 국사매국노 이병도

한사군 중에서 대방군(帶方郡)의 위치에 대한 설명은 아마도 이병도의 진번군고(眞番郡考)라는 글이 1929년 사학잡지(史學雜誌) 40-5권에 실린 이후 이병도와 그를 추종하는 자들이 계속 주장하여 현재 한국사통설로 자리매김한 것 같다.

 

이병도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고 한다.

고려사 지리지 황주목(黃州牧)조에 보면 황주목은 본래 고구려의 동홀(冬忽)이라고 했고 그 밑의 분투(分註)에 일운(一云) 우동어홀(于冬於忽)이라고도 하였다. 여기에 우동어홀의 동어(冬於)(중국의 지명인) 둔유(屯有)의 음()이 서로 근사(近似)한데 우리의 주의를 끈다. 속히 말하자면 (중국의 지명인) 둔유(屯有)(고구려의 지명을 조작해서 표시한) 동어(冬於)는 즉 같은 말의 이사(異寫)가 아닌가 생각된다. ()는 고구려 지명위에 흔히 붙는 것으로 방위의 상(: )을 표시하는 의미의 말이 아닌가 추찰된다. 하여튼 둔유현(屯有縣)이 지금의 황주(黃州)에 해당하리라고 생각하는 점은 비단 지명상으로 뿐만 아니라, 또한 아래에 말할 지리상으로 보더라도 적중(的中)하다고 믿는 바이다(이병도, 진번군고. 한국고대사연구. 史學雜誌 40-5. 1929)

 

진번군에 대한 통설(通說)

진번군(眞番郡)은 한나라 무제(武帝)가 서기전 108년 설치한 이른바 한사군(漢四郡)의 하나로 설치 이후 곧 토착세력의 반발로 인해 낙랑군(樂浪郡)에 통합되고 낙랑군은 이곳에 남부도위(南部都尉)를 설치하였다고 한다. 이후 2세기 후반 한(), ()의 토착세력이 강성해져서 이 지방을 공격하게 되어 남부도위는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이에 AD 204년 공손도(公孫度)의 아들 공손강(公孫康)이 후한(後漢)의 헌제(獻帝) 건안년간(建安年間: AD 196-220)에 낙랑군 소곡 둔유현(屯有縣) 이남의 땅을 떼어서 새로 대방군(帶方郡)을 설치하였다.

 

그리하여 대방군(帶方郡)은 약 1세기 동안 낙랑군 남부도위 소관의 대방(帶方), 열구(列口), 남신(南新), 장잠(長岑), 제해(提奚), 함자(含資), 해명(海冥) 7개 현()을 관할하면서 치소(治所)는 대방(帶方)에 두었다. 현재 황해도 봉산군 사리원 동남 문정면에 있는 속칭(俗稱) 당토성(唐土城)이 그 유지(遺址)로 추정되고 있다. .....미천왕 때인 AD 313년 대방, 낙랑 양군 지역에서 버티고 있던 장통(張統)이 고구려의 압력에 견디지 못해 한인(漢人)을 거느리고 요동으로 달아나자 대방군(帶方郡)은 고구려에 점령되고 말았다. 이것이 아마도 지금 한국사의 통설로 자리매김한 것 같다.

 

중국의 둔유현(屯有縣)이 어째서 동흘(冬忽)로 둔갑되었을까?

중궁의 지명인 둔유현(屯有縣)은 고구려의 동홀(冬忽)이나 우동어홀(于冬於忽)과 전혀 한자도 다르고 음도 다른 것인데 이병도는 우동어홀(于冬於忽)을 동어(冬於)란 지명으로 변개창작(變改創作)한 후 둔유(屯有)와 동어(冬於)가 똑같은 음()이라고 단언하면서 진번을 중국 땅 지명인 둔유(屯有)에서 황해도 동홀(冬忽)까지 끌어들였다.

 

어째서 이병도는 학자적 양심으로 도저히 말도 되지 않는 논리로 중국의 둔현을 황해도까지 끌어들였을까? 한국에서 청주와 충주는 비슷한 음이어도 다른 지역이며 결코 같을 수 없다. 이병도는 우동어홀을 동어로 개변창작해서 소설을 쓴 것이며, 이를 오늘날 한국의 역사학자들이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 조선사편수회에서 촉탁(囑託: 常勤臨時職)으로 근무했던 이병도는 그의 와세다대 스승이며, 조선사편수회를 담당했던 소우키치(津田左右吉)가 남만주철도주식회사의 용역을 받아 쓴 <조선역사지리>(朝鮮歷史地理: 1913)에서 낙랑군의 남부에는 후한(後漢) 말에 이르러 대방군(지금의 경기, 황해도 지방)이 분치되었다라고 쓴 것을 추종해서 자신이 아는 한국말의 발음을 빙자하여 둔유(屯有)와 동흘이나 우동어흘을 동어(冬於)로 변개(變改)하여 뒷받침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한국 고대사를 중국의 속국인 한사군으로 만들기에 혈안이 되었던 일본인 조선사편수회의 이마니시 류(今西龍)가 진번군을 충청·전라북도 지역으로 비정하고 이나바이와키치(稻葉岩吉)가 충청도 지역으로 비정한 것보다 황주를 대방의 중심지로 비정하여 더 악랄하게 일본인의 구미에 맞도록 역사를 조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병도의 변개창작(變改 創作)의 소설같은 황해도 대방설에 대해서는 역사학자 이척일이 200962일자 한겨레신문에 기고한 반박 글이 있으므로 우선 이를 소개코자 한다. (*이덕일의 설명: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58262.html)

 

둔유란 어떤 곳인가?

전한서 지리지에 낙랑과 관련된 25개현

전한서 지리지에 낙랑군에 관련된 25개 현이 있다고 했는데 다음과 같다. 조선(朝鮮), 남함, 패수, 함자(含資), 점제, 수성(遂城), 증지(增地), 대방(帶方), 사방, 해명(해명), 열구, 장잠(長岑), 둔유, 소명, 누방, 제해(提奚), 혼미(渾彌), 탄렬, 동이(), 불이, 잠대, 화려, 야두매, 전막, 부조 등이라고 한다.

 

이 중에서 수양제가 고구려를 침략할 때 평양으로 향하는 길에 위치한 지명은 (1)낙랑, (2)조선, (3)함자, (4)수성, (5)증지, (6)대방, (7)장잠, (8)제해, (9)혼미, (10)동이 등 10개 군현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 지역은 모두 수나라와 고구려의 국경 부근 고구려 땅인 것이다. 낙랑이 평양일 수 없고, 수성이 황해도 수안일 수 없으며, 대방이 황해도와 경기도 땅일 수 없고, 동이가 함경도 덕원일 수는 더더욱 없다.

 

나머지 1)남함, 2)패수, 3)점제, 4)사방, 5)열구, 6)둔유, 7)소명, 8)누방, 9)탄렬, 10)불이, 11)잠대, 12)화려, 14)야두매, 15)전막, 16)부조 등이 있는데, 이들 15개 지역은 낙랑을 비롯한 10개 군현과 인접된 지역이고, 화려를 비롯한 이들 지역 역시 요하 부근의 고구려와 수나라 국경지대에 위치한 지역이지 결코 평양이나 평양 주면일 수 없다고 본다. 둔유(屯有)역시 고구려와 수나라의 국경지역, 낙랑에 소속된 지역이었지 결코 황해도가 아니다.

둔유를 우동어홀로 둔갑시켜 황해도가 대방이라고 한 이병도는 한국사 매국노 짓을 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둔유와 우동어홀이 같은 지방일 수 없다. 어거지 논리로 대뱡이 황해도에 있었다고 궤변을 한 이병도의 한국사매국노 짓은 지탄받아 마땅하며, 이를 추종하는 자들도 한국사매국노를 추종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41개(1/3페이지)